편집디자인은 어렵다. 아마 같은 직군의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거다(나만 그럴지도?)
나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긴시간 일을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모든 디자인이 창작의 고통이 동반되지만 편집과 인쇄 관련 디자인은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화면으로 만든 디자인을 내 생각, 내 계획대로, 최소한의 오차로 만들어 손에 쥐기까지 그 과정이 아주 정교하고 어렵다. 나도 시작은 편집과 광고였지만 결과물에 대한 부담감이 손을 놓게 만들었다. 내가 실수한 적은 없었지만 동료들이 크게 실수하는 과정들을 보며 항상 맘 졸여야 했다. 그 큰 실수란 인쇄사고지. 편집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20명 30명이 봐도 없던 오타가 인쇄만 되어서 나오면 빨간 연필로 그어놓은 오답처럼 떡하니 보이기도 했다. 신입시절 인쇄사고라 하면 정말 건물이라도 무너진 거처럼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항상 바짝 긴장하고 쫄아있던 신입에게 인쇄사고란 대담함을 보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패배감과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몰고 오는 아주 큰 사고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다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적응하고, 이해하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인쇄 PTSD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다른 일을 할 수 도 없었다. 그때는 딱히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은 UI를 하고 있다.
편집에서 멀어지다 보니 오히려 부담없이 대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궁금해지는 것도 많고. 정말 가끔은 편집디자인을 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한데 그때의 단단했던 배움이 지금까지도 한몫을 해준다. 그때 오히려 바짝 긴장하고 배웠던 것들이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지금은 가장 많이 쓰는 디자인툴이 피그마다. 어도비는 필수고. 툴의 정보를 SNS나 유튜브에서 많이 찾아 보게 되는데 눈에 띄는 광고가 하나 있었다. Neon Like라는 책. 인쇄에 관련된 책이다. 형광 별색에 관한 책인데 그때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의심 없이 그냥 사게 되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할 일이 없을법한 책인데도.
인쇄는 별색을 이용해 화려한 색을 표현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형광 별색들을 사용해 비비드한 색상을 인쇄물에서 만들어내는 방법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인쇄란 것이 참 어렵다.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똑같이 인쇄를 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가 있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한다. 이 책의 목적은 형광 별색을 사용해서 인쇄했을 때 최종 인쇄물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려고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말이 뭔가에 꽂혀 그냥 구매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공부하고 배워서 나쁠 거 없다. 써먹을 일이 없다 해도 이렇게 정보와 지식이 하나하나 쌓여 가는 게 좋다. 의외로 재밌기도 하고.
마치 소설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지면으로 이런 색을 낼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다. 별색을 하나하나 쓰는 게 아니고 형광별색을 사용해 전체적인 느낌을 비비드 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니. 획기적이다. 하지만 난 쓸이 없는 걸. 편집을 하고 있다면 꼭 사보는 걸 추천한다. 책 후반부에는 컬러패치도 나오니 참고하면 아주아주 도움이 될 거 같다.
지금은 관련 분야가 아니지만 나에게도 너무 흥미로운 책이었고, 도움이 될만한 책이었다. 트랜드가 어떤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분야가 다를지라도. 하찮은 일상생활에서도 영감을 얻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배움은 끝이 없다니까. 끝이 있으면 좋겠다.
신입 때 배웠던 스킬과 노하우들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하고 싶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때 배웠던 것들이 나에게 지금 엄청난 도움이 되고 그게 쌓여서 다른 일들을 잘할 수 있게 된 거라고. 그때는 하찮게 생각했던 것들, 작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뭉쳐 지금의 내가 편한 거라고. 힘들지만 조금씩 더 쌓아보면 나중엔 더 레벨업된 나를 보게 되겠지.
그게 후회일지 뿌듯함일지는 그때 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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